전 세계인의 발목을 잡았던 코로나 팬데믹 동안 역설적이게도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그 시기가 끝나자 바로 자동차 산업에는 경고등이 들어왔다. 언제, 누가 없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많은 자동차 제조업체가 공장의 생산 능력 대비 낮은 가동률로 인해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이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나 공장을 폐쇄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최고 수익을 내던 기업들이 5년도 채 되지 않아 경영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철옹성 같았던 자동차 업계 대표 기업들의 미래가 지금은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는 모습이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크라이슬러, 지프,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등 18개 브랜드를 거느린 스텔란티스는 판매량 저조로 인한 경영 위기로 CEO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사임하였다. 또한 재고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램(RAM)의 픽업트럭 생산을 중단하고, 직원 1,200명 해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닛산은 글로벌 공장 직원9,000명을 감원하였으며, 포드 또한 영국과 독일 공장에서 직원 4,000면을 해고했다. 폭스바겐도 독일 내 공장 폐쇄를 검토 중이다.
그 외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으로 타격을 입었으며, 제너럴 모터스(GM) 역시 비슷한 이유로 경영 위기를 맞이해 중국 내 사업 구조조정 비용으로 50억 달러가 발생하였다. 자동차 하면 떠오르는 기업들이 모두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이들의 경영 위기가 모두 같은 이유에 기인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통 원인도 분명히 존재한다.
핵심 주제는 전기차이다. 각국의 친환경 정책과 자동차 트렌드의 변화로,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나 전기차 모델을 개발∙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내연기관 모델을 생산하던 기업이 전기차 생산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차 생산 시설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전기차 생산이 내연기관 생산보다 훨씬 큰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기차 출시가 반드시 해결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삭감 및 폐지 등으로 전기차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9,239억 원이었던 전기차 보조금 예산을 2025년에는 7,800억 원으로 축소할 예정이다. 유럽 국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독일, 스웨덴, 프랑스, 스웨덴 등도 보조금을 대규모로 축소하였다. 전기차 보조금은 매년 줄거나 기준이 엄격해졌고, 전기차 판매량은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위 언급한 국가의 2024년 1월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원 대비 10% 이상 감소했다. 중국과 노르웨이를 제외하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 차이가 꽤 크다 보니 정부의 보조금이 구매 여부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이에 더해, 전기차 시장은 이미 BYD, SAIC 등의 중국 제조사와 테슬라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 이들은 혁신 기술과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전기차를 출시해 이전에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장악했던 기업들을 위협하며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 자동차 연구소의 페르디난드 두덴회퍼(Ferdinand Dudenhöffer) 소장은 “중국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고, 독일은 이를 잃고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테슬라 역시 최근 출시한 사이버트럭의 최상위 버전이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남아돈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노후 모델 교체 속도가 느려지면서 매출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 들이닥친 경제 불황과 경기 침체로 전기차는 물론, 내연기관차 모두 판매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가 경영 위기의 타개책으로 혁신 기술 개발 및 전기차 출시 등을 내세우고 있으나, 긍정적인 효과를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는 브랜드 이미지나 수익 문제로 인해 A-B 세그먼트 모델은 거의 출시하지 않고 있는 데 반해, 업계 내 자리를 지키거나 무섭게 성장하는 기업들은 여러 엔트리급 모델을 선보이거나 저렴한 가격대의 다양한 세그먼트 모델을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자동차 업계의 줄다리기 싸움에서 유일한 승자가 중국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앞서 언급한 두덴회퍼 소장 역시 “중국을 이길 수 없다면, 함께하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각한 판매 부진으로 디자인 언어의 변화를 시도 중인 폭스바겐은 중국의 자동차 업체 립모터(Leapmotor)의 지분 20%를 매입하여, 유럽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보려는 기업이 늘었다. 현대자동차와 제너럴 모터스는 승용차와 상용차의 공동 개발 및 생산 등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였고, 도요타는 BMW와 수소 연료 전지 기술 개발과 스포츠카 공동 개발 등을 협력하기로 하였다. 그 외 자동차 기업 간 협동 외에도 여러 기업 혹은 단체 등의 협조를 통해 첨단 기술 개발과 제조 비용 절감, 혁신 기술을 탑재한 전기차 제작 등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기존에 자동차 업계를 지탱하던 기업들이 휘청거리며 현재 글로벌 시장은 격변을 겪고 있다. 왕좌를 지키고자 하는 전통 기업들의 발버둥과 거대한 파도 같은 중국 기업의 기세가 앞으로의 자동차 업계를 어떻게 만들지 귀추가 주목된다.